CHO KANG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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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서문 -갤러리A 오아영 대표-
조강남의 여성 표현 방식
 
 모든 여성은 태어나자마자 남성의 시선에서 나를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 여자아이들에게 흔히 입력되는 어떤 하나같은 목소리들 - 몸가짐을 바르게 하라든지 얌전하라든지 드세면 안된다든지 똑똑하지말고 지혜로우라든지 순결하고 예뻐야 한다는 주문들은 이 가부장 세상의 주인공인 남성을 염두에 둔 언어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류 역사상 여성이 공식적으로 이 사회안에서 직접 1.돈을 벌거나 2.공부를 하거나 3.권력을 가지거나 4.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된 지는 100년이 채 안 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은 남성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남성에게 선택받아야 했다. 사회는 남성들의 올림픽이었고 여성은 그 남성선수들을 가정에서 돕고 품고 기르는 사적인 역할로서 존재해왔다.
 
한편, 오래도록 살아온 방식은 이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그들이 만들어온 크고 작은 문화의 디테일과 관습이 목숨을 부지하는 가운데 계승된다. 근대화이후 여성일반에게는 이전에 상상도 못했던 권리와 자유가 주어졌다. 그녀들이 갑작스럽게 훅 하고 주어진 것을 잘 누리기엔, 각종 제도와 문화를 비롯한 사회환경과 제반인식 그리고 역사적으로 오래 좌절되어온 경험과 패배의식이 장애물로 작용했다.
여자는 여전히 남자의 눈치를 본다.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아 이십대에 대학 교수로 임용되기까지 했던 내 엄마는 , 서른살까지 풍만한 가슴이 부끄럽고, 정숙한 여자로 보이고 싶어서 가슴을 칭칭 동여매고 다녔다고 했다. 제맘대로 예쁘지도 못했던 거다. 그리고 첫키스 상대인 아빠와 결혼을 해 버렸다. 사회안에서 제 능력을 충분히 인정받으면서도 여전히 남성의 시각- 남자에게 사랑받을만한가-으로 스스로를 검열하는 버릇이 있었던 것이다. 나의 짝짓기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무어가 문제겠느냐마는 내 의사결정과 정체성을 좌우하는 최우선순위의 기준이 나자신이 아닌 타인, 남성일반의 시각이 된다는 것은 비극적이다.
이렇게 제도가 바뀌어도 깊은 역사에 뿌리내린 정신적인 관성은 바뀌기가 어려워서 현대를 열고 태어난 나와 같이 어린 여자들도 애쓰지 않으면 남성이라는 거울을 통해 스스로를 인식해버리기가 너무도 쉬운 것이 사실이다.
 
진실한 예술작품은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반드시 사회의 진실들을 반영하고야 만다는 어떤 대가의 유명한 말처럼, 그래서 이제까지 한국의 화단에서 여성을 표현한 작품은 여성을 아주 많은 경우 1.인간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성자체를 탈각한 무성의 이미지 혹은 2. 남성 시각에서 보는 여성의 아름다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에로틱하거나 모성이거나 보호가 필요하도록 연약하고 수동적인 애련의 이미지 로 그려왔다. 여성도 여성을 남성의 시각으로 보고, 남성도 여성을 남성의 시각으로 봤다.
 
반면, 평생 여성을 그려온 조강남 작가는 본격적으로 자유를 대담하도록 누리는 21세기의 여성을 그린다. 여성만의 특징을 잔뜩 부각했는데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여성성을 주체적으로 긍정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여성표현흐름과 대비되며 눈에 띈다. 작품 속 여인들은 사랑의 주체이자 소비의 주체이고 본인의 매력과 인생을 마음껏 누리고 즐긴다. 분명한 여성성인데, 이전에 보던 것들과 다르다. 조강남 여인들의 아름다움은 눈이 부시고 강하다.
그녀의 여인들은 치마 속이 보이든 말든, 턱이 겹쳐서 이중턱이 되든 말든 주변 상황이야 누가 보든 말든 기분껏 맘껏 자유롭게 뛰고 구르며 키스한다. 이런 자유로움은 수동적인 존재가 갖지못하는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한껏 뿜어낸다. 그녀들은 바로 이 세상의 주인공이다.
 
작가는 여성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전면에 강력하게 내세우며 눈부시도록 찬란하고 환하게 표현한다. 그녀 작품 속에서 여성은 총천연의 컬러고 남성은 모노톤으로 그려진다. 남성들은마치 여신의 은총을 받는 것만 같은 모습이다. 작가는 여성성을 강력히 긍정하면서 여성이 끌어안고 물들이는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한다. 이것은 부드럽고 여성적인 것들에 바치는 찬미이자 그녀가 제시하는 삶의 방식이다. 전쟁이 벌어지고 미사일이 날아오는 상황에서 총천연 컬러로 표현된 여성이 모노톤의 남성을 끌어안고 주변시선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열렬히 키스하는 진한 장면들은 남성과 맞서거나 대결하지 않고 남성적인 것들을 포용해서 더 행복한 세상을 창조해내는 강력한 여성성의 힘을 보여준다. 마치 이런 아름다움과 사랑이 세상을 비로소 총천연색으로 만들어준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재밌는 것은, 딥키스를 그려내고 작품속 여인들에게 최신상의 패션스타일을 입혀내는 작가 본인은 정작 어릴적에 보수적이어서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리지도, 연애를 자유롭게 하지도 못했다는 사실이다. 내 엄마가 그러했듯이 처음 연애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 "여자들이 더 자유로우면 좋겠다"며 "사회가 쓸데없이 너무 심각하다"는 그녀는 본인이 하지 못했지만 너무나 살고 싶었던 삶을 표현해내는 중인 것이다.
 
그래서 조강남 작품속 화양연화의 여성들은 특정 연령대 특정 스타일의 여인이 아닌 상징이다. 누군가의 시선에 비친 이미지가 아닌, 우리네 모든 여성들 속 본디 그자리에 오롯이 살아있는 찬란히 빛나는 바로 그 여성성의 상징. 에로티시즘과 애련과 모성을 넘어선 여성성. 스스로 빛나는 항성의 여성성. 자연으로부터 생명 만드는 일을 위임받은 이의 아름다움. 사람을 만들고 먹일수있는 몸을 가진 존재가 지닌 무한한 사랑의 감수성. 세상을 근본적으로 구원할 여성성이다. 바로 이 여성성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남자와 여자를, 인류를 모두 천국으로 데려간다고 작가는 작품에 표현된 즐거움과 행복감으로 강력히 역설하는 중이다.
 
이 여성성은 우리 사회가 이제껏 조명한 적 없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서 빛났던, 그리고 이제야 꺼내어지기 시작한 바로 지금 이시간 한국의 것이다.
 
조강남 작가 작품이 한국 미술사가운데 가지는 한 의미와 가치가 이 자리에 있다. 나는 여기에 주목한다.

이데올로기, 국가, 패권, 미사일, 전쟁, 휴전선, 판문점
이런 거대스런 것들이 세상을 장악하는 듯 대단해보여도,
일상의 사랑앞에 무색해진다는 것을.,,
가장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구원할 거에요


=샤넬길을 걷는 여자들
 내가 아는 좋은 예술작품의 조건 하나는, 여러 방향과 관점에서 꿰어볼 수 있어서 그 각각의 해석가능성이 어우러져 감상의 큰 덩어리를 완성해내는 것이다. 나의 감상글이 언제나 길어지는 이유다.(좋은 작품은 당연히 수많은 관점에서 보아 지니까. 그걸 다 적으려면 할말이 끝이 없지..)
 
요모조모 볼 거리가 많아 뜯어볼수록 흥미로운 조강남의 작품세계 가운데 주목할만한 한 부분은, 여성들의 패션이다.
작품 속 여인들이 등장하며 들고 걸친 것들은 전세계 동시대인 모두가 공유하며 삶을 함께해온 실제 다국적 유명 브랜드인 나이키, 아디다스, 컨버스의 상품부터 시작해서 샤넬, 발렌티노, 구찌, 프라다, 에르메스, 버버리, 디올 등의 동시대 럭셔리 브랜드의 실제 아이템들이기 때문이다.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전세계적으로 출시된 상품들을 작품 속 여성들에게 입혀놓은 건 그들이 지금 여기서 그림을 감상하는 우리와 동시대에 존재한다는 인상을 준다. 실제로 지금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한다는 것.
"어? 이거 내 운동화인데 얘도 신었네" "내가 갖고싶었던 가방이랑 원피스인데 캔디걸은 이거 다 가져서 좋겠다 " 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런 패션의 삽입은, 동시대의 보편룰인 자본주의 시스템이 조성해놓은 환경을 또한 상기하게 하는데, 이 세계에선 동시대인들이 공유하는 나이키 같은 브랜드가 존재하고, 다수가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컨버스 운동화 같은 상품이 있고, 샤넬 클래식 같이 최상품이란 게 있어서 그것을 다수가 욕망하게 되는 당연한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상품은 거대한 문화다. 작품은 브랜드가 만들어낸 판타지와 이것을을 욕망하는 가운데 드는 인간의 어떤 들뜬 마음까지도 비춘다.
 
조강남 작가의 작품가운데에는 여성에게 럭셔리-소위 명품-를 입혀놓은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럭셔리는 보편다수가 공유하는 로망이자 판타지이고, 계층의 상징이자 인류 문명이 이제껏 이룩해놓은 가장 정교하고 좋은 것들의 정점이다.
그래서 작품 속 럭셔리 입은 여성은 꿈과 판타지를 이뤄낸 여성을 상징하기도, 여성이 뽐낼 수 있는 최대치의 아름다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여성들에게 럭셔리를 입혀놓은 지점이 재밌어지는 건 역사적 맥락과 대조되는 지점에서다.
"우리 엄마는 생선 머리부분을 제일 좋아해" 인류 역사 가운데 너무나 오래도록
엄마로 길러지고 엄마로 자라나서 엄마로 죽었던 우리의 선배 여성들은 엄마 이외에 다른 이름을 가질 수가 없었다. 여성은 엄마고 엄마는 헌신의 화신이었다. 엄마는 본래 그런 거니까. 엄마는 따뜻한 밥을 놔두고 남은 찬 밥을 먹었다. 엄마는 가끔 쉰 반찬을 먹었다. 나와 아빠에게 사과를 예쁘게 깎아 쟁반에 담아주고 자기는 꼭지 주변 부분을 먹었다. 엄마는 그랬다. 남편과 새끼들을 먹이지만 제 입에 들어갈 것은 챙길줄을 몰랐다. 가족의 욕망을 채워주는 엄마지만 엄마는 욕망하지 않아서 세상은 엄마가 욕망할 줄 안다는 걸 잊었다. 그래서 여성의 욕망은 너무 쉽게 탐욕으로 간주됐다.
 
여성들에게 신상 럭셔리를 입혀낸 조강남 작가는 어쩌면 무엇보다, 바로 이 가장 좋은 것들을 여성들에게 누리게 해 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너희는 최고라고. 다 너희 거라고. 마음껏 욕망하고 가져도 된다고. 마음껏 누리라고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고보니 작가도, 엄마다.
 
작가는 화려한 럭셔리 패션을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포착하며 부각해내고 있다. 키스하는 남녀의 전신모습이 그려진 Kiss 속 여인은 발렌티노 컬렉션의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윗가슴까지의 시스루와 드레스에 박힌 루비를 실제 드레스처럼 절묘하게 표현해냈다. 실제 작품에는 드레스에 박힌 것과 같은 루비들이 촘촘히 박혀있어 황홀하다.
 
그래서 조강남 작가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그녀의 나이를 듣고 하나같이 놀란다. 아주 잘 그리는 20대 작가인줄 알았다고. 매우 트렌디하고 감각적이기 때문이다. 요즘말로 "인싸"스런 이미지들이다.
실제 조강남작가는 평소 문화예술 트렌드나 패션에 관심이 많다. 하루종일 작업실에서 그림만 그리면서도 요즘 새로 뭐 나왔는지에는 관심이 많아 꼭 챙긴다. 2015년엔 럭셔리 편집샵 엘본과, 2019년 20대 타겟의 여성의류브랜드 레코브와 콜라보상품을 내놓았다.
 
조강남 작가가 창조해낸 여인들의 패션은 즐겁다. 행복하다. 격려한다. 대중이미지로 익숙해져있는 이미지가 반갑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우리가 사는 바로 지금 여기 이 시간 이 공간을 관통하는 이야기라는 걸 알려준다. 내가 갖고 싶던 바로 그 상품들이 그림 속에 있다. 꿈꾼다. 내가 아는 바로 그 최신의 비싼 것들을 몸에 두르고 손에 든 여인들의 사랑스런 모습은 귀엽고 위트있다. 엄마같은(나는 작가를 알고 있으니까) 작가의 사랑이 담뿍 느껴진다.
 
그리고 내 귀에는 이런 속살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는 사실 생선 머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도 샤넬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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